Archive Error : 기록의 바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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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94 댓글 0건 조회 58회 작성일 25-06-07 21:54작가명 | 곽한비, 방선우, 기획 이진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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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 2025-06-07 ~ 2025-06-29 |
초대일시 | 2025-06-07 |
휴관일 | 월요일 휴관 |
전시장소명 | 아트 포 랩 |
전시장주소 | 14099 경기 안양시 동안구 신기대로33번길 22 지하1층 아트 포 랩 |
관련링크 | https://blog.naver.com/art-for-lab/223886647835 4회 연결 |
관련링크 | https://www.instagram.com/art.for.lab 2회 연결 |
Archive Error : 기억의 바깥
글 | 이진선
망종(芒種) 무렵, 전갈별 아래로 달이 조용히 걸음을 옮기던 어느 밤.
하늘에서 선형(線形)을 거부하는 은빛 가시가 내려왔다고 전해진다.
그 빛은 지상의 틈을 누비며, 오랫동안 억눌려온 기억과 기록의 잔해를 어루만졌다.
그 순간, 근대의 견고한 기록 체계에 균열이 생겼다.
시간과 권력의 그늘 속에서 침묵하던 기억과 기록들이
서서히 깨어났고, 완전함을 자처하던 질서는 무너졌다.
효율성과 체계라는 미명 아래 배제되고 누락되었던 이야기들이 되살아나 공백을 채우기 시작했다.
은빛 가시는 먼지 쌓인 나무 서랍, 순서를 거부한 목록, 뿌리째 잘린 식물의 어원,
라틴어 아래 눌린 토착명, 사라진 존재들과 말해지지 않은 이들의 흔적을 다시 부유시켰다.
종이로 이루어진 검색 엔진의 활자들은 자리를 이탈하고, 녹색 피가 흐르는 발 없는 동물들은
숨겨온 뿌리를 드러내며 흰 벽 사이를 노닐었다. 기록되지 못한 채 존재만 허락된 파편들은
새로운 형식과 언어로 서로를 알아보고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설명이 아닌 감응의 언어로,
분류가 아닌 관계로, 정리가 아닌 흔들림으로 존재했다.
태양이 가장 높이 솟는 하지, 낮이 가장 긴 날. 달빛은 가장 깊은 그림자 속으로 물러나고,
은빛 가시는 다시 하늘로 스며들었다. 형식을 획득하지 못한 기억과 기록의 잔재들은
다시 바깥의 자리로 흩어졌으나, 그 밤의 진동은 언젠가 또다시 도착할 것이다.
– ”기록의 바깥” 채록
본 전시는 선형적인 보편의 기록 체계가 ‘비표준’으로 규정하고 주변부로 밀어낸 다층적 서사, 감각적 기억, 비정형적 존재들의 자리를 다시 상정해보려는 시도이다. 인간 사회는 질서와 통제를 위한 범주화와 분류학으로 종(種)의 구분, 명명법, 인덱싱 시스템 등을 분명히 하며 획일적인 지식과 정보의 계승을 효과적으로 이뤄냈다. 그러나 표준화된 기록 체계는 유효성과 객관성을 전제한 채 다름을 제거하고 중심화된 인식을 정당화하며 개별적 기억과 다성적 서사를 지속적으로 배제하고 소거하는 구조로도 작동해왔다.
곽한비와 방선우는 고정된 범주화와 선형적 관점들에 의해 선택되지 못한 채 밀려난 기억-기록의 회복을 위해 오래된 식물도감과 서랍 속 기록물들을 호출한다. 전시 서문에 등장하는 ‘은빛 가시’는 이러한 작가적 개입의 상징이자 지워졌다 믿었던 기록의 바깥에서 도착한 가능성이다. 두 작가는 아날로그 기록 매체가 지닌 물질성과 분류 방식을 해체하고, 현대 기술언어와 교차시킨다. 획일적인 역사 서술과 주류 기억에 가려진, 존재하되 기록되지 못한 파편들은 형태를 바꾸며 다른 방식으로 연결된다. 둘의 작업은 기억-기록을 지우고 다시 쓰는 행위이자 열린 상태로 남겨두기 위한 수행으로 전개된다.
곽한비는 디지털 데이터가 저장 장치와 매체 환경을 옮겨 다니며 소멸되는 과정을 인간 기억의 상실과 겹쳐본다. 삭제와 망각이 내재된 시스템 속에서 실종된 기억의 빈틈을 기록하고자 기억을 분류하고 보관하는 제도적 장치인 도서카드목록함과 가족이 사용하던 서랍처럼 사적인 기억이 담긴 아날로그 오브제에 주목한다.
<기억의 조건>(2025)은 유년 시절 다니던 도서관에 있던, 폐기 직전의 회전 서가에서 영감을 얻은 미디어 설치 작품이다. 한때 공공의 기억과 기록을 보관하던 서가는 이 작업 안에서 개인적인 기억과 뒤섞이며, 일종의 타임머신처럼 작동한다. 관객은 스마트폰으로 미디어 사물의 NFC를 스캔해 특정 데이터와 기억에 접근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정보의 저장과 접근, 그리고 데이터의 사물화를 직접 경험하게 된다.
<모이라이 아카이브>(2025)는 그리스 신화에서 삶의 운명을 관장하는 세 여신 모이라이의 행위-실을 잇고, 묶고, 끊는-를 기억 아카이브의 원리로 확장한다. 영상은 <잃어버린 것을 위한 청구기호>(2025)의 길잡이이자, <기억의 조건>(2025)에서 보여주는 아카이브 방식이 신화 속 마이라이 여신들이 실을 다루듯, 기억을 선택하고 연결하거나 잊는 과정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관객이 기억을 어떻게 바라보고 정의하는지, 무엇을 기억하고 망각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오래된 서랍>(2025)은 작가와 가족이 오랜 시간 사용해 온 나무 서랍 속 사물들을 통해 사적 시작이 축적된 물성과 기억의 층위를 소환한다. 서랍은 기록과 망각이 공존하는 장소로서, 손때, 긁힌 자국 등 물리적 손길이 남아 있다.
<잃어버린 것을 위한 청구기호>(2025)는 도서카드목록함의 물리적 구조와 분류 체계를 해체하여 작가 고유의 기억 분류 체계에 따라 청구기호를 새롭게 쓴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다양한 은유로 표준화된 도서관 분류법이 지닌 객관성의 환상을 해체하며, 사적이고 유동적인 기억의 질서를 정립한다.
기술과 신화, 공적 분류와 사적 흔적, 디지털과 아날로그,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며 다층적 시공간의 층위를 넘나드는 아카이빙 실천은 형식적 실험을 넘어, 표준화된 프레임을 의도적으로 흔들어 작가만의 비표준적 기록 방식을 모색하는 전략적 접근이다.
방선우는 식물 분류학의 역사적 맥락을 해체하며, 과거의 명명 방식과 그 속에 내재된 권력적 위계를 비판적으로 해석한다. 『조선 식물도설 유독식물편』에 수록된 식물 도상을 분석해, 도감이 가진 선형적 서술과 편집의 규범성을 비트는 동시에 기록 체계가 은폐해온 비가시적 존재와 서사의 틈을 파고든다. 식물을 계급화하고, 주변화되거나 소외된 존재들과 결합시킨 기존의 서사적 프레임을 전복한다. 시적 언어와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해 기존의 기록 회로를 벗어난 새로운 시각적 신화를 생성한다. 이런게 탄생한 혼성 이미지는 드로잉, 페인팅, 펜던트 오브제 등 다층적 매체로 확장되며, 기록-해석-전달의 고정된 회로를 벗어난 재생산 불가능한 이미지로 전환된다.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달’은 은색의 구조체로 구현되어 식물 군집 사이를 유영한다. 역사적으로 억압되거나 타자화된 존재의 상징으로 낙인찍혀 온 달의 문화적 계보를 뒤집고, 이탈과 재조립, 자유와 순환의 동적 기호로 새롭게 작동시킨다. 달의 순환적 리듬은 식물의 생태적 네트워크와 우주적 규모의 천체 질서까지 아우르는,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로 기능한다. 예컨대 <궤적의 환상근>(2025)에서 식물 세포의 섬유질 조직(근)은 뿌리의 생태적 네트워크와 은하계 별들의 중력적 연결을 은유하며, 미시-거시의 이분법 해체를 가시화한다.
아카이브 작업인 <기억괴>(2025)는 소멸과 생성, 망각과 현존이 뒤섞인 괴(塊, 덩어리)로서, 기억의 층위와 경계가 꿈의 중첩처럼 펼쳐진다. 식물의 독, 별의 잔해, 눈물의 결정체 등 탈영토화된 존재들은 관계와 상실, 사랑과 소멸의 감각을 환기한다.
<희미한 꽃들의 이탈된 몽상 궤적>(2025), <궤적의 환상근>(2025), <잃어버린 망각으로의 이행>(2025), <유합된 호흡의 뒤틀림>(2025), <기억괴>(2025)에 이르기까지 작품들은 서로 다른 형식과 명칭을 부여받았지만, 단일 우주관 아래에서 서로 감응하며 움직인다. 식물 세포의 미시적 구조에서 우주적 스케일의 거시적 질서까지, 방선우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궤적을 추적하며 생태학적 상상력이 맞물린 총체를 체감하게 한다.
Archive Error : 기억의 바깥
참여작가
곽한비, 방선우
기획
이진선
일시
2025. 6. 7.(토) - 6. 29. (일)
11-6pm / 월요일 휴관
장소
아트 포 랩
경기 안양시 동안구 신기대로 33번길 22, B1
주최 및 주관. 아트 포 랩
2022년을 시작으로 올해로 제4회를 맞이하는 전시 공모 프로그램 <사각지대>는 독립예술공간 아트 포 랩의 '대안적 예술 아카이브' 프로젝트 입니다. 2025년, 아트 포 랩이 새롭게 제안하는 <사각지대>의 공모 주제는 "기술과 인간성의 경계 Cᴛʀʟ+Aʟᴛ+Hᴜᴍᴀɴ" 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존재 방식이 기술 발전과 어떻게 충돌하거나 융합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사각지대를 탐구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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